문학과 나
하늘이 정해준 사람
량영철
내 원래의 꿈은 문학이 아니였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해서 고전들을 두루 읽었지만 시내암이나 라관중, 오승은 같은 작가들은 하늘로부터 정해져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사람이 아닌 줄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문학은 감히 꿈도 꾸지 못했다.
그래서 내 첫번째의 꿈은 화가였다. 그런데 그 꿈은 아버지의 결사적인 반대로 허공중의 구름이 되여버렸다. 그림을 그리면 빌어먹는다는 리유에서였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지만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나의 화구들은 몽땅 아궁이의 재가 되여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꿈은 작곡가였다. 풍각쟁이가 된다고 반대도 할 법한데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반대를 하지 않았다. 문제는 돈이였다. 나는 학비를 마련코저 두층 하늘을 이고 산다는 탄광으로 가 채탄도 해보았고 목재판에서 아름드리 벌목도 해보았다. 결국 탄광에서는 갱이 무너지는 사고를 당했고 목재판에서는 덮쳐드는 발구에 몸이 10여메터 밖으로 뿌려나가기도 했다.
그 뒤로 나는 우왕좌왕했고 오락가락했으며 허둥지둥했다. 꿈을 잃은 몸은 어디로 떠내려가는지도 몰랐다. 끝없이 방황했다. 방황하면서도 방황인 줄도 몰랐다.
나는 사회의 쏠쏘리패들과 휩쓸렸다. 절도하고 싸움질했으며 야바위까지 했다. 그러다 한 놈이 사람을 죽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집 나갔던 나의 정신이 되돌아오게 되였다. 그것이 23살 때의 일이다.
큰 삼촌네 집에는 <조선어수첩>이라는 꽤 두꺼운 책이 있었다.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출판한 그 책에는 수필이나 소설, 시나리오 같은 것들을 아주 쉽게 풀이해놓고있었다. 례를 들면, 수필이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사건이나 인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그대로 적어내는 것. 나는 그것이 신기했다. 아무나 적어낼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니. 하늘이 정해주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이라니!
그리고 나는 쪼박글 한편을 뭉뚱그려 어떤 잡지사에 보냈다. 그런데 그게 단박에 채용통지서가 날아올 줄이야. 나는 또 한편 뭉그려서 보냈다. 또 채용되였다. 비로소 나는 문학에 꿈을 갖게 되였다.
나는 걸탐스레 책을 읽었다. 주변에 있는 책들은 모조리 빌려다 봤고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 나는 문학에 완전히 미쳐버렸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썩은 바줄, 성한 바줄이 중요하지 않다. 그냥 바줄이기만 하면 된다. 잡을 것이 있기만 하면 된다. 내 눈에는 문학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무렵에 어머니가 의료사고로 세상을 떴고 같은 해에 나는 어떤 녀자로부터 자존심에 커다란 스크래치를 입는다. 문학은 로신이나 김학철 같은 분들이나 하는 것이지 너 같은 대학도 못나온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야.
본시 가진 게 없는 자일수록 자존심이 강한 법이다. 무지야말로 최고의 용맹을 낳고 우둔한 자가 곰을 잡는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나는 94년 <송화강>지를 통해 데뷔를 했고, 97년 <도라지>에 “우리들의 강”을 발표, 수상하면서 정식으로 작가 반렬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제 문학은 내게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나는 또 문단으로부터 외면과 왕따를 당하게 된다.
이상한(?) 책을 너무 많이 읽었던 때문일가. <데칸쇼>를 중심으로 정신분석학과 량자물리학에 몰입돼있었고 의식의흐름, 신사실주의, 흑색유머 같은 사조들을 내 문학에 동원하여 실험작이랍시고 발표를 하고있었던 것이다. 이런 나를 평론가들은 물론 작가들도 곱게 보지 않았다. “미친 소리에 잠꼬대”라는 혹평이 쏟아졌고 공식적으로 내는 선집에서도 내 글만은 제외 되였다. 당시 나는 아래와 같은 몇몇 사람들을 당대 최고의 소설가로 꼽고있었다. 중국의 염련과와 한국의 김승옥, 일본의 무라까미 하루끼와 그리스의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고 미국의 잭 케루악.
그 뒤로 나는 창작과 점차 멀어지게 되였고 결혼하면서는 아예 붓을 꺾어버렸다.
그러다 다시금 붓을 집어 들게 된 것은 리혼이라는 너무 큰 고통과 마주하면서였다. 리혼이 남보다 더 아플 수밖에 없었던 것은 내가 어머니와 하나밖에 없는 녀동생, 아버지를 다 잃은 고아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나는 뭐라도 쓰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이 가난과 어둠이다. 가난을 죄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있는 자들이 모르고 하는 소리다. 가난한 자들은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가난처럼 사람을 치사하고 비겁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게 만드는 것도 가난이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를 못한다.
가난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늘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경제적이던 정신적이던. 내가 가난을 직시하는 것은 칙칙한 어둠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을 벗겨내고자 함이다. 가난은 극복의 미학이지 결코 멸시받고 조롱당할 대상은 아니라고 본다. 어둠은 당당하게 맞설 때 비로소 벗겨진다.
가장 힘들고 절박할 때 훌륭한 글이 나온다는 이 말을 나 혼자는 굳이 신념한다.
[도라지 202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