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고개의 중턱을 넘으면서

시내물
创建于2023-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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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자는 지천명이 되면 갱년기라는 불청객이 발볌발볌 찾아와서 곤경을 겪는다. 불혹을 넘기 바쁘게 일찍 찾아오기도 한다지만 보통은 50살에 들어서면서 예고된 갱년기에 접어든다. 시도 때도 없이 생기는 심신의 피로에 여러가지 증상이 덧붙는 것을 보면 녀자의 50대는 젊음과 늙음의 분수령인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사람은 살면서 여러번의 과도기를 겪는다고 하였다. 갱년기 역시 녀자의 인생에서 또 한번의 과도기이다.

그렇게 녀자의 50대는 갱년기와 함께 하는 과도기에서 서서히 나이를 갉아먹는 세월의 포로가 된다. 그 흔적이 고스란히 보여 거울 앞에 마주서면 저도 모르게 자신이 미워질 때가 있다. 다행이 현대미용기술 덕에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얼굴로 둔갑할 수 있어 녀자들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거기에 용모나 차림새, 품위에 따라서 50대 ,60대도 30대, 40대로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로쇠를 막느라 모지름을 써도 50대 녀자는 자주 할머니로 불리울 확률이 높다. 

몇달전 나는 몸이 불편하여 병원에 가서 심장초음파검사를 받게 되였다. 의사선생님은 상냥하게 “머리를 이쪽으로 하고 누우세요.”하고 알려주더니 기계를 몸에 대면서 “아매 어떻게 불편합니까?”하고 물었다. ‘아매?’  환자는 나 뿐이라 분명 나보고 묻는 것이였다. 진찰기록부에 명백히 나이를 56세로 밝였는데도 나를 ‘아매’ 라고 부르다니? 심경이 좀 불편했다. 한번 뿐이라면 실수로 받아들이겠는데 련속 ‘아매’라고 불렀다.

“아매, 이쪽으로 돌아누우세요.”

“아매, 다 끝났습니다.” 

“아매, 여기 서있지 말고 복도에 나가 기다렸다가 진단결과를 가져가세요.” 

   

   그 날 나는 의사선생님의 ‘아매’라는 부름 소리에 저으기 언짢았다. 만약 쇼핑하러 갔다가 가게주인이 그렇게 불렀다면 앵돌아져 물건도 사지 않고 돌아서련만 병원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의사 선생님한테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불쾌하다는 리유로 진찰을 거부하는 이상한 환자가 될 수도 없어 고분고분 의사선생님의 말씀대도 이쪽 저쪽 돌아우면서 척척 배합하여 순조롭게 검사를 끝마쳤다. 

   내가 할머니로 보이다니? 서운했다. 병원으로 간다고 얼굴 화장을 하지 않았고 옷차림에도 신경 쓰지 않아 나이 들어보였겠구나 하고 합당한 구실을 찾아보았지만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서 눈 밖에 보이지 않는데, 그리고 아직까지 흰머리카락도 몇오리밖에 없기에 염색 한번 하지 않은 검은 머리로 하여 당연히 젊다고 자부하는 나였다. 

     부모님의 좋은 유전자 덕분에 남들이 흔히 하는 쌍겹눈수술도 피해온 눈매를 가졌고 흔하디 흔하게 하는 눈섭도 내추럴 그대로 봐줄만 하다고 여겨왔으며 몇년전까지도 잡티 별로 없이 하얗고 촉촉한 얼굴피부로 남들의 부러움도 자애내던 나다. 하지만 이제는 늘어나는 주름과 축 처진 피부, 가라앉는 눈꼬리는 어쩔수 없이 늙었음을 선언한다. 그러니 50대 중반에 할머니 소리도 듣게 되는구나 하는 실망감이 들었다. 사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이 나이에 언녕 손군들을 거느린 진짜 할머니들이였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 내 나이일 때 큰언니 아들은 소학생이였고 우리 딸애도 유치원에 다녔다. 그리고 조카들의 자녀들은 중학생이거나 대학생이 되기까지 하였으니 진작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젊은 의사선생님이 어느 겨를에 그 많은 환자들을 나이까지 체크하면서 호칭을 구별해서 부르랴, 대충 짐작해서 불렀을 것이다.’ 하고 애써 스스로를 위안하였다. 

    나도 생면부지의 사람을 마주하고 호칭으로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녀자의 경우에는 언니로, 이모로 통하고 남자라면 두리뭉실하게 호칭 없이 말을 걸 때가 많다. 그런데 애매한 년세의 분들에게 할머니, 할아버지라고는 선뜻 부르지 못한다. 

   우리 연변은 원래 ‘맏아매’, ‘맏아바이’가 제일 무난한 부름이였는데 지금은 이 호칭을 거의 쓰지 않는다. 교원이였던 나는 ‘선생님’이라는 부름이 귀에 박혀 누가 언니, 이모라고 부르면 습관이 되지 않아 상대방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도 있었다. 혹시 나를 아는 사람인가 하고...

   언니라는 호칭은 이젠 그나마 습관이 되였는데 할머니라는 부름에는 진짜 기분이 언짢았다. 과도기가 없이 그저 녀자에서(더우기는 ‘선생님’에서) 할머니가 되는 기분이였다고 할가?

    그 날 ‘아매’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나는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늙음’의 나이를 가늠해보았다. 유치원 애들 눈에 나는 확실히 할머니로 보일 것이다. 10대들한테도 할머니로 판단될 수 있는 나이이다. 젊은 세대에게도 자칫 할머니라 불리울 수 있다. 왜냐하면 언니, 누나 또래의 나이를 훨씬 넘어선 년령대이니까. 그러니 할머니라는 호칭은 50대에게는 억울하지 않은 것이다. 부르는 이의 눈높이에 맞춰 들으면 할머니라는 호칭은 년장자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 아닐가 하는 너그러운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내 친구는 40대 초반에 벌써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애썼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이름을 내놓고 다양한 호칭이 있다. 유부녀를 누구의 안해, 누구의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고 직무에 따르는 호칭도 그렇고 그냥 한어로 편하게 “로표”, “쑈리”라고 부르는 것도 그렇다. 연변에서는 부부 사이에 ‘동무’라고도 부른다. 우리 딸애는 갓 말을 번지기 시작할 때 “너네 아빠 누구냐?”하고 물었을 때 ‘동무’하고 엉뚱한 대답을 해서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조선어보다 한어가 더 익숙한 남편은 아예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그런대로 남편을 ‘동무’라고 불렀으니 딸애는 ‘동무’를 아빠 이름으로 알았나 보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의 엄마로 애들의 할머니로 살았지 언제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본 것 같지 않다. 누가 엄마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별로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딸과 사위들이 장난 삼아 “추태련 녀사님”하고 부른 적이 있는데 어머니는 버릇 없다고 나무란 것이 아니라 그렇게 흐뭇해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과도기도 없이 할머니가 된 셈이다. 

   지금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이 고맙다. 옛 동료들이 ‘최선생’ 대신 불러주는 내 이름이 더 귀맛 좋게 들리는 것도 시집 편에서 ‘제수’, ‘올케’라는 호칭보다 이름을 불러온 것에 습관되였기 때문인 것 같다. 할머니 나이가 되였는데도 내 이름을 불러주는 그 센스에 오히려 감사하다. 매일매일 나라는 존재를 느끼게 하여 고맙고 소중한 이름에 나 자신의 값어치를 돌이켜보게 하는 순간순간이 있어 행복하다. 그 이름이 빛나지 않아도 좋으니 오래오래 불리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한번의 인생 과도기를 겪는 50대, 1960년대생인 우리를 ‘신로인’이라고 하니 그럼 나는 ‘신할머니’이다. 새로운 이름에 맞게 새로운 생활에 도전하고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새 꿈도 가져본다. 

    소녀의 사춘기가 끝나면 짧은 청춘의 성숙기에 들어선다.

    녀자의 갱년기가 끝나면 기나긴 로년의 과도기에 들어선다. 

    할머니가 되였다는 것이 더는 섭섭하지 않다. 백세시대니까 아직도 반세기나 할머니로 살 수 있다. 

    녀자는 나이가 들어도 녀자다.

    녀자는 할머니가 되여도 녀자이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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