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물的美篇

시내물
创建于2022-03-23
阅读 140
收藏TA

需扫码在手机上打开
文章后点击更新提醒

                파이내플 향기 나는 친구
                          최소천
      요즘 시장에 가면 어떤 계절이든 별의별 과일을 다 만나볼 수 있다.  과일매대에 가면 제철과일은 물론 이름 모를 열대, 아열대 과일이  즐비하게 진렬되여있어 고객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중에서도 항상 나의 눈길을 끄는 과일이 있으니 바로  파이내플이다. 
     내가 고중 2학년 때니까 꼭 35년 전 일이다. 그 때 현성 고중에서 재학중이던 우리 시골아이들은 집이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터라 대부분 한칸에 10명이 드는 학교 기숙사에 거주하였다. 지난 세기 80년대 초, 개혁개방의 훈풍이 우리 여기 시골에 불어오기까지는 아직 이른 때라 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학교식당에서  배나 곯지 않을 정도로 하루 세끼를 에우다보니  간식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지금은 흔하디흔한 사과나 배 같은  과일도 당시로서는 그림 속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따뜻한 초여름날로 기억된다. 기숙사 친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시내돌이를 나가고 또 친척집에 간 애들도 있다 보니 나 혼자만 침실을 지키게 되였다. 점심 때가 거의 될 무렵, 영숙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침실로 돌아왔다. 과일난전에서 기 막히게 맛 있다는 과일을 사왔으니 애들이 모여들기 전에 우리 둘이서 후딱 먹어치우자고 눈짓했다. 열명이서 나눠먹기는 너무 작고 또 가격도 어마어마하니 나눠먹기가 아깝다는 말이였다. 처음 보는 그 과일이 파이내플이라는 열대과일인 줄 몰랐던 우리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그윽한 과일향기를 맡으면서 손에 들고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골치거리가 생겼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안다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뚫어져라 바라보아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요즘 세월엔 파이내플 껍질을 깎는데 편리하게 특수제작한 칼가지 갖추어져있어 잠간 사이에 껍질을 다듬어서 고객들에게 맛 있게 속살을 내놓을 수 있지만 그 때는 그 비싼 과일을 사먹는 사람이 가물에 콩나듯 드물었고 미리 껍질을 벗겨 파는 경우도 없었다. 처음 보는 과일인 데다 껍질이 어찌나 두꺼운지 사과나 배처럼 그대로 먹을 수도 없었다.
    영숙이는 점심 때가 거의 되는데 애들이 돌아오기 전에 빨리 먹자고 자꾸 재촉했다. 아무리 보아도 모양이 우리 고향의 큼직한 잣송이처럼 생겼고 껍질도 비슷한 것이 잣알처럼 쏙쏙 뽑아내서 먹으면 될 것 같았다. 두 손에 들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역시 잣알이 박힌 모양처럼 보였다. 살짝 눌러보니 약간 물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닿았다. 손가락으로 파서 집게로 뽑아내듯 쏙 당기니 과일살이 껍질과 함께 조금 떨어져나왔다. 나는 마치 신대륙이나 발견한듯 한점씩 뜯어내서는 영숙이 입에도 넣고 나도 한 입 맛보고 하였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지난 세월에 남방 과일이 여기 동북, 그것도 연변에서도 제일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 고장까지 오느라면 한두달 정도 걸렸겠으니 아무리 껍질이 두껍고 덜 익은 과일이라도 오는 길에 너무 농익어서 손가락으로 누르면 패여들어갈 정도였다. 이렇게 껍질을 깎아 속살만 먹어야 할 과일을 우리는 껍질만 손으로 겨우 우벼먹고는 비싸기만 하고 먹을알이 없다고 장사군을 욕하면서 아쉬운대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파이내플을 그대로 밖에 있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런데 점심 때가 되여 한 친구가 숙소에 들어서면서 “누가  파이내풀을 껍질만 벗기고 통채로 쓰레기통에 던졌네. 아까워서 어떡해.”라며 못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와 영숙이는 약속이리도  한듯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은 마주보면서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도로 주어다 깨끗이 씻어서 먹으려는 작정이였다. 부랴부랴 쓰레기통에 달려가 보았지만 그 사이에 이미 누군가 주어가고 없었다. 
     결국 그 시절에 그렇게  귀하고 비싼  파이내풀을 우리 둘은 냄새만 맡아보고 맛도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버린 셈이 되였다.  
 지금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집구석에 앉아서도 수요되는 물건들을 구매할 수 있다. 그러니 요즘 아이들에겐 이 이야기가 천방야담처럼 들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게를 먹어본 사람은 아마도 그 용기가 대단했을 거라고 로신선생은 말한 적이 있다. 또 독열매라고 세상사람들이 멀리했던 도마도를 첫 사람으로 먹은 사람은 어떤 만용으로 맛보았을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파이내플을 먹는 데는 그 무슨 용기나 담략이 필요하단 말이 아니다. 우린 단지 먹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고 파이내플을 볼 때마다 그 시절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무식함이 가져다준 창피함보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니 모두가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 세월에 영숙이가 어이하여 통 크게 그 비싼 과일을 사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혼자 먹지 않고 나와 같이 맛보려고 한 그 마음씨를 생각하면 비록 파이내플을 제대로 먹지는 못했어도 그 정이 눈물나게 고마울 뿐이다. 지금까지도 나는 영숙이한테 그 파이내플 빚을 갚지 못한 송구스러운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지금 세대들처럼 터치페이란 것을 모르고 지내온 우리는 사탕 한알(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도 나눠먹었고 집에서 김치나 떡 같은 먹을거리들을 가져오면 한침실 친구들이 우르르 모여 굽이 날 때까지 네 것 내 것 없이 축내기 일쑤였다. 사실 영숙이와는 한학급도 아니였는데 우린 그렇게 가까워졌고 내가 혹시라도 아프면 옆에서 병수발을 들어주었고 주말이면 기숙사에 들어박혀있는 나를 시내에 있는 자기 고모 집에 데리고 가서 색다른 음식을 대접해주었다.
    과일가게에서 파는 파이내플을 볼 때마다 영숙이가 떠오르지만 30여년 동안 나는 영숙이와 자주 만나지 못했다. 15년전 출장길에 고향에 갔다가 련락이 닿아서 저녁에 잠간 만난 것이 졸업 후 우리의 첫 만남이였다. 그 날 우리는 특별히 모둠과일을 청해놓고 맥주잔을 기울였다. 내가 특별히 파이내플을 골라 영숙이의 입에 넣어주면서 “이젠 이걸 먹을줄 알지?” 하자 영숙이는 배를 끌어안고 깔깔 웃었다. 그도 아직 그 때 추억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있는 것도 아니지만 젊어서는 각자의 생활반경에서 바삐 보내다 보니 서로를 만나볼 겨를이 없었다. 여유가 조금 생길라 하니 영숙이는 늙으신 시부모, 친정부모 네분의 잦은 병원출입으로 주말에도 몸 뺄 새 없이 바삐 돌아친다. 2년 전인가 일부러 나를 찾아와서 하루 동안 실컷 수다를 떨었고 그 후 오래도록 만남을 가지지 못했다. 잠간씩 워이신으로 안부 정도를 묻고 부질없는 약속만 잡다 만 것 같다.
     자그마한 체구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겨나는지 그녀는 시집, 친정집 두곳을 실북처럼 오가면서 매일 로인들 시중을 든다고 한다. 친구한테도 그렇게 따뜻이 대해주는데 량가 부모에 대한 효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사람은 겉모양만 보고 그 인끔을 가늠할 수 없다. 나는 수수한 외모와 파이내플처럼 통통한 체구를 가진 친구 영숙에게서 진정한 향기를 느꼈다. 
   두꺼운 껍질을 벗겨야  노랗고 맑은 속을 알수 있는 파이내플처럼 나의 친구 영숙이의 소박한 모습의 내면에도 맑은 단즙 같은 인심이 꽉 차있다.  단단한 껍질이 있기에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파이내플처럼 긴 세월이 흘렀어도 친구한테서 풍기는 은은한 향기는 나의 마음을 달콤하게 한다. 
阅读 140
文章由 美篇工作版 编辑制作
投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