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절기가 금방 지나간 1월 23일, 날씨는 아직 추운 겨울이였다. 2004년도에 한국에 갔다가 2011년도에 귀국한 나는 청도에 있는 자식따라 청도로 와서 삶의 터전을 닦으면서 살다보니 고향 떠난지 20년이 되도록 꿈속에서만 가보았을뿐이다.
이번에는 두루 고향에 가 처사할 일이 있으니 인테넷으로 4박 5일 가목사행 왕복 비행기표를 샀다.
정작 떠나게 된다니 준비할 물건도 있거니와 더우기는 변화된 고향 모습을 보게 된다는 설레임에서 잠결에서 깨날 때도 있었다. 나를 키워주었던 정든 고향에는 아름다운 산과 강물이 날 보면 얼마나 반가워할가하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없이 들끓었다.
“오랫만에 가는데 뭘 준비해야 할까? 친척, 친구들이 왔다고 반가워 할텐데 ?”등 이러저러한 생각에 사로 잡혀 마음이 한없이 설에였다.
1958년에 어머니를 따라 보따리를 걺어지고 <전국제일집체농장>이란 이곳에 집체이주와 소학교로부터 중학교, 고중까지 다녔고 학교를 졸업해서 단위에 출근하여 퇴직할 때까지 이 고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성장한 곳은 바로 여기였고 내 인생에 가장 보람차게 보냈던 고장이기도했다.
23일 오전 7시반에 청도 –가목사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2시간 20분돼서 가목사 (佳木斯)비행장에 도착하게되자 마중 나오신 나의 사촌형님이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본 비행장은 옛날 모습이 아닌 새로 건축한 자그마한 아담진 비행장이였다. 우리 두 내외와 형님은 자가용에 앉아 고향 마을로 떠났다. 넓다란 고속도로로 내달리는 시간은 거퍼 10여분이되니 내가 살던 고향 마을에 도착하였다.
도착한 오후 이곳저곳을 다녀 볼 일을 마무리하고 친구들의 집도 구경하고 이야기도 나눴다. 친구들의 열정적인 대접도 받았다. 옛날 학교마당 앞에 새로 지은 아파트가 줄비차게 늘어져 전혀 모를 정도였다. 일보러 다니는곳마다 사업일군들이 열정적으로 우리 일을 도와 주었다.
이튿날 마을 로인협회의 어르신들과 친구들 도합 70여명을 청하여 <서울 요리>라고 쓴 식당에서 한 끼를 대접하였다. 찾아 오신 고향 어르신들과 친구들은 20년만에 처음 만났다고 부등켜 안기도 하였고 손잡으며 인사하는 순간이 정말로 기뻤다. 많은 친구들은 얼굴에 주름이 밭고랑되고 머리엔 흰서리가 내려도 20년전의 모색이 알릴 정도였고 몇사람은 알아보기 힘들었다. 밥상에 둘러 앉아 동년의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이야기도 나누면서 즐거운 한 끼를 보냈다. 세찬 풍파속에서 맺어진 인연, 그리움에서 부닥치며 건배하는 고향술은 취하지도 않게 되였다.
다음날은 동창들과 자리를 같이했다. 내가 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지역에서 온 동창, 그리고 본향진에 있는 동창 도합 7명 동창들이 배우자와 같이 동행하여 식당에서 멋진 한 끼를 대접시켰다. 1966년전 중학교 동창들인 우리는 몰라 볼 정도였다.년령상으로 보면 모두 75세 、76세되는 중로년이 되였지만 그렇게 늙어보이지 않고 매력이 있어 보인다. 어떤 동창은 졸업해서 처음 만나게되니 놀라울 정도였다. 뭐뭐해도 동창 만남이 제일 기쁜 만남이였다. 사진으로 기념을 남기고 즐거움으로 추억을 남겼다.
머물러 있는 기간 양로원에 가서 친척되는 어르신의 문안도 해봤고 친구들이 거주하는 아담진 아파트 구경도 했다.
짧디짧은 4일 동안 동네 길을 돌아 볼 시간이 안돼서 크게 돌아 보지 못했지만 큰 길은 아스팔트로 되였고 주항도로 량켠에는 회색으로 된 벽돌로 담벽을 멋지게 만들어놓았다. 많은 주택들은 옛날 모습이 사라지고 새로 지은 아파트가 줄지어져 새농촌 건설의 민속문화관광지로 개발하는 중이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20년 변화는 천지개벽일 것이다. 오매에도 그리던 나의 고향이 이같이 아름다운곳으로 되여 더없이 즐거웠다.
귀로에 들어선 1월 27일 아침, 바래주던 동네마을 친구들이 “또 다녀 오세요 !보고 싶습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나누며 손을 굳게. 향아. 내가 다시 너의 품에 안길 그날을 기다려다오.
2024년 10월 31일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의
우수작품
*배경음악은 방송 끝까지 들을 수
없다면 파일로 들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