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시시각각 변화불측 (时时刻刻变化不测) 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건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내 마음도 례외없이 변하게 될줄 몰랐다.
제 마음을 붙들고 살기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50여년 전 내가 소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우리집에 도적이 든 일이 있었다.
그날은 한마을에 살고 계시는 이모님 생신날이여서 온 집식구가 이모네 집에 가서 먹고 놀다가 밤중에야 돌아왔는데 생각밖에 도적이 들었다.
농촌이라 전에도 집을 비우고 다니는 일이 비일비재였지만 한번도 사고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생각밖에 사달이 생겼다. 우리집 사정을 잘 아는 누군가 우리집에 가만히 기여들어 도적질을 하였다.
가난한 살림살이라 별로 값진 물건은 없지만 누나의 새 옷 한벌, 자전거, 서랍 속의 돈 65원을 가져갔다. 좀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어 형님이 신고하려 했는데 지금처럼 감시카메라가 없어 확실한 증거가 없고 손실도 큰 축이 아니여서 동네 부산하게 떠들지 말라고 아버지가 막아나섰다. 하지만 누나는 너무도 아까워 이틀간 몸져 누워 앓았다.
그때부터 나는 도적을 증오하였고 머리 속에 도적은 누나말처럼 '모기처럼 가증하고 거지 보다 못한 인간쓰레기'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그런 내가 이제는 이상하게 나도 도적이 되여 보겠다는 엉뚱한 궁리를 하게 되였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지난 달 어느 하루 옛날에 한 학교에서 몇년간 함께 교원사업을 하며 아주 가깝게 보내던 봉철이라 부르는 친구가 사전에 아무 기별도 없이 우리 집을 방문하였다.
녀석은 여러가지 값비싼 선물을 갖고 찾아왔는데 며칠 전에 독일에서 귀국하였다고 한다. 그는 나에게 깜짝선물을 안겨 주려고 련락을 하지않고 이렇게 돌연습격을 하였다고 한다. 10년만에 만난 우리는 며칠간 즐겁게 먹고 마시며 회포를 나누고 1박2일로 장백산 유람도 다녀 왔다.
그런데 친구 봉철이를 배웅하고 집에 와서 책을 보려고 책장을 연 나는 그만 깜짝 놀랐다.
책장의 책이 많이 비여 있었던 것이다. 점검해 보니 내가 평소에 많이 아끼던 «림꺽정», «한국 명시선집», «뿌쉬낀시선집», «맹자전집», 김학철작가의 «나의 길», 등 너댓권의 책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책이 발이 달려 저절로 산책을 나갈 수는 없는게고 십중팔구는 친구 봉철이놈 수작이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내 짐작이옳았다. 내 책장이 자리가 너무 비좁아 자기가 보관해 준단다.
"야, 이 도둑놈새끼, 날강도 같은 놈아!!" 나는 펄펄 뛰며 전화로 욕을 퍼부었지만 기실 속으로는 용서하였다. 로신선생의 작품에도 나오지만 책도적은 도적이 아니라는 말이 있잖은가?! 오히려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배웠으니 이다음 봉철이나 다른 친구집에 가서 책도적질을 해서 지식과 지혜를 풍부히 해야겠다.
2024년 10월 24일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의
우수작품
*배경음악은 방송 끝까지 들을 수
없다면 파일로 들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