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위력/김지견

夜明珠(慧莲)
创建于6天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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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민족의 운명과 발전은 그 민족의 문화 창작과 발명인이 누구였던가에 따라 문화와 언어의 정체성이 결정되고 그 범위도 차츰 넓어지고 위력이 빛뿌려진다.

   세상 복잡다단한 다문화 민족들이 자기문와 언어의 발전을 위해 피타는 노력을 아끼지 않기에 그 민족의 미래와 전도에도 미증유의 변화가 생기고 새로운 발로가 산생하는 것이다.

    (훈민정음)의 발전과 번영은  우리 민족의 부흥과 생사존망의 동력으로 세종대왕의 창시적 발명으로 뿌리가 된것이고 그 위대성과 특수성이 온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며 력사의 위훈을 떨치게 되었던것이다.

    황금의 시기 철없는 내가 살은지 40대일때 한중 (韩中) 수교 초창기  우리말 (훈민정음) 의  가치와 중요성은 전세계를 휩쓸었고 그 정체성과 국제화가 대국을 흔들었다. 그때 해도 중국은 우리 교포들 내놓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가 하나도 없었다. 한중(韩中) 수교가 기발처럼 일떠서고 많은 한국기업들이 입국하게 되자 한국문화를 홀시한 중국정부는 안달아나게 되었다. 1993년 시대의 발자취를 따라 급기야 세워진 청도원동학원(原东学院)에서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게 되었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한국기업이 바라는 직원문제가 난제가 되어 엄중한 과제로 우리 앞에 해결책을  바라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전자산업, 조선업, 첨단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 왔기에 아세아의 금룡이라 명명 받았을 뿐만아니라 승승장구로 보폭을 넓히고 있을 때였다. 청도시 황도개발구에만 해도 1450개 크고 작은 한국기업이 우후죽순같이 일떠서게 되었는데 그 금물살의 열쇠 키를 우리 학원이 잡은 것이다.

    중국청도시개발구 황도(荒岛)는 원래 사람살곳이 못되는 재황든 땅이라 했는데 그곳에 한국을  비롯한 외자 기업이 수풀처럼 일떠서면서 금빛나는 황도 (黄岛) 로 탈바꿈하였고 이름도 위풍도 완전 달라지면서 세상에 소문나게 되었다. 내가 교편을 잡은 중국학원은 대만사장이 투자해 꾸린 대형학원인데 학생이 수천명에 달하였다.

   학원의 의미지와 목표라면 외자기업에 외국어를 잘하는 인재를 하루빨리 양성해 추천하는 사업이였다. 당시 중국에서 대학시험에 락방하여 실망한 수많은 고등생들에겐 우리 학원이 지름길로 갈수있는 유일한 절호의 기회라 구름처럼 밀물처럼 학생들이 몰려왔다.

    한국기업수요에 관한 해설책을 보면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한개 기업에서 요구하는 직원만 100여명에 달하는데 요구조건도 특수하지 않고 한국어로 일반 대화할 수준이면 된다는것이다. 진도 콘테나회사에서 요구하는 직원만해도 능히 한국말할수 있는 사무실 직원 60명, 용접기술공 200명이 수요된다는 것이다.

    학교 당국은 마음에  불이 붙어 사업의 필요성이 얼마나 긴박하고 중요한가를 알고 이 과중한 임무을 우리 한국어 학부에서 수행하라고 지시했다. 교원이래봐야 나와 금방 사법대학을 졸업한 김채순선생뿐인데 이 과중한 임무를 어떻게 완수한단말인가? 학생은 많은데 한국말 할줄아는 학생은 한명도 없으니 진퇴량난이 아닐수 없었다.

    이 문제는 일조일석에 해결할 문제도 아니고 땅콩볶듯이 재촉하거나 서둘러 해결할 일도 아니다.만일 생각없이(선비가 책장을 기와장 번지듯) 쉽게 생각한다면 웃음거리가 될것이고 회사질책을 면치 못할것이다. 그나마 우리 학생들이 우월점이라면 한국말과 문자는 모르지만 영어기초는 괜찮을 정도로 능숙한것이다.

    내가 졸업반 2개반과 중반3개를 책임지고 김채순선생이 다섯개 초등반을 담당하였다. 김채순선생은 음악에도 미립이 튼 재간둥이였다. 학생들은 배우려는 열정은 높은데 한국어는 처음 상대라 (ㄱㄴㄷㄹ) 도 모르는 이름이 고등생이지 한국어는 배운걸 금방 잃어버리는 초등생 수준밖에 안되었다.

    어떻게 가르쳐야 배운것을 잃어버리지 않게 할것인가 연구과제였다.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수업효율이 살아남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업자의 사명이 완벽해질것이였다. 나는 우선 우리한국어와 중국어문법의 공통성.한국어 자모음과 중국말 병음의 공통성. 한국어 자모음이 결합과 중국어 병음 자모음 결합될때 새로운 뜻의 글이 형성되는 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야 가능하다고 느꼈졌다.

    나는 학생들이 한국어문법을 빨리 배우고 깊이 기억하도록 우리 문법을 가사로 만들고 재미나는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였다. 과연 학생들은 흥취를느껴 열심히 배우더니 때와 장소도 없이 길을 가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숙소에서도 부르고  운동장에서도 부르면서 인제야 기억하기 쉽다고 좋아하였다. 일상대화가 엄청 중요함으로 실물을 보고 한국말을 기억하는 습관을 키우기 위해 그림을 잘 그리던 못그리던 단어 뜻대로 그림을 그리는 습관을 키웠다. 그 뜻인즉 기억력을 키우기 위한 수단이였다.

    때로는 현물을 찾아 야외도 가고 가까운 바다도 가면서 저희들끼리 옳던 그르던 한국말 대화를많이하게 하였다.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기업을 참관시키고 이미 취직한 졸업생들의 사업 애로가 무엇인지 까닭을 알게하고 한국말이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를 느끼게 하였다. 모든 교학방법과 수단은 전부 노래 배우기에 결부시킴으로서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것이 참 재미있다는 흥취를 가지게 하였다. 초등반 한국어 수업시간은 완전 음악시간이라해도 과언이아닌 온 학교가 노래를 배우는 예술의 전당이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은 하루하루 변모했고 한국어 례법대로 인사말도 곧잘하여 누구를 만나도 깎듯이 한국말로 인사하는 습관이 스스로 형성되었다. 평상시 한국말로 대화하는 학생을 표창하고 상장까지 주면서 경상적으로 반급 별로 학교별로 한국말 겨루기 시합을 가졌다. ( 지성이면 감천이라 ) 했거늘 노력의 대가로 학생들은 점차 우리 한국말이 자기들  중국말보다 간편하면서도 배우기 쉽고 발음도 간단 할 뿐만아니라 문자의 수량도 훨씬 간단하다는 점. 그와 반면에 내용 전달과 뜻은 정확하고도 선명할 뿐만아니라 동등한 의사교류도 순탄하게 진행된다는 우점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위대한 문학과 문자(훈민정음)의 창시자가 바로 세종대왕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비록 중국처럼 수천년역사는 아니지만 (훈민정음)이 현대 세계문화역사발전에 마멸할수 없는 진보적 빛을 뿌리고 있다는 점에 우리 학생들은 감동이었다.학생들이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면 자기들 말은 발음도 특별하게 복잡다단하고 한가지 발음속에 숱한 글자가 산생하는 복잡하고 천태만상이라는 점. 그런데 한국말은 간단하고 글도 단조롭지만 의미지는 선명하다는 진리를 알아낸 것이다.

    와중에 학생들은 단지 취직을 위해 한국말을 배우던데로 부터 개념이  바뀌여 (목마른 사람이 물 마시듯이) 배움의 열정과 흥취가 분발해졌다. 졸업하고 한국기업에 취직한 학생들 말에 의하면 좀더 한국말을 열심히 배우지 못한것이 후회라고 했다. 1995년 청도시 황도(黄岛)개발구에서 열린 12개 외국어학원 예술문예 공클에서 소인이 지도한 (原东学院) 졸업반학생들의 대합창이1등상을 수여 받았다.

    당시 합창내용은 불후의 세계 명곡(내가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그리고 (아리랑) 연변 예술영화 (별찌) 의 주제곡 우렁찬 노래는 온 장래의 우렁찬 박수 소리속에 (훈민정음) 의 위대함을 대국땅에 우렁차게 울려퍼지게 그 위력을 과시하였다.30년전 60여명  졸업생들이 부른  (훈민정음) 의 넓은 무대 국제화로 가는 노래는 우리 한국학생들 보다 못지않을 졍도로 발음도 정확하고 그 정체성이 완전 바다로 가는 교향곡같이 지금도 나의 귀전에서 메아리 친다.

2023.9.6.

2024년 10월 10일 KBS 한민족방송

"보고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에서의 

우수작품

*배경음악은 방송 끝까지 들을 수 

없다면 파일로 들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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