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그 날
        최소천

시내물
创建于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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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년중 허구많은 명절이나 기념일에서 스스로 나만의 ‘3대 명절’을 정해놓고 있다. 차례로 3.8절, 교원절, 그리고 내 음력 생일이다. 그 가운데서도 3.8절은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한달 먼저 퇴역군인인 남편한테 건군절을 축하해주고 나면 교원절은 엎음갚음의 기회가 될 뿐이고 내 생일은 남편 생일과 며칠 차이 나지 않기에 남편 생일에 나도 덩달아 축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1년중 3.8절에 가장 큰 기대를 걸게 된다. 그 날이면 남편한테서 백원짜리 몇장을 받아서 챙기는 것이 유치한 ‘관례’로 되여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로임카드를 나한테 맡기고 달마다 용돈을 받아쓰면서도 3.8절만은 무슨 수를 대든 선물 살 돈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야 ‘평화의 3월’이 유지되겠으니 말이다. 

   우리 고장의 3월은 한달 내내 녀성의 명절인듯 싶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3.8절을 맞이하며 미리 한번 쇠고 3월 8일 당일에는 에누리 없이 꼭 쇠고 3.8절과 작별하느라 나중에 또 한번 쇤다. 물론 사람마다 사정이 좀 다를 수 있겠지만 가까운 친구라고는 열 손가락안에 들만큼 적은 나도 3월달에 들어서기 바쁘게 3.8절 행사들을 미리 계획해놓는다. 20여년전 한 학교 동료들의 위이신 그룹- ‘동심동락협회’ 모임은 새해 첫 행사인데다가 남성 동료들이 선물까지 준비해놓고 청하는 중대한 행사라 꼭 참석해야 한다. 하여 제일 먼저 그들과의 모임 날자를 알아보고 다음으로 집식구(남편)와 쇠는 날자 및 친구들과 만나는 날자를 정해놓는다.  

(동심동락협회 남성동료들의 선물을 받아안고...)

    무뚝뚝한 남편은 나의 이런 ‘최대 명절’에도 선물이나 꽃바구니를 사들고 오는 법을 모른다. 그저 지갑에서 돈을 꺼내 “옛소, 3.8절인데...”하고 건네주고는 그걸로 끝이다. 간혹 기분이 좋을 때면 “양고기꼬치나 먹기오.”라고 하기도 한다. 다른 남편들은 여차여차 명절분위기를 낸다더라고 귀띔해도 마이동풍이다. 자꾸 바가지를 긁었다가는 그 백원짜리 몇장도 차려지지 않을 것 같아 속으로만 푸념하다가 넙죽 돈을 받아 손가락에 침을 묻혀가며 일부러 큰 소리로 “한장, 두장, 석장...”하고 센다. 

      3.8절이면 아침부터 여기저기에서 <녀성은 꽃이라네> 노래가 워이신으로 날아든다. 이날이면 나도 여느 녀자들처럼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옷장에서 이 옷 저 옷 꺼내들고 거울 앞에 이리저리 비춰본다. 문을 나서기 전에도 거울을 마주하고 얼굴화장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래서 남편이 이렇게 골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자꾸 비춰봐서 거울이 닳지 않을가? 그만하면 꽃 같으니 이젠 나가고 되오.” 

     이제는 할미꽃이 되였건만 그래도 꽃이라고 하니 은근히 마음이 설레인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3.8절에 꽃다발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간혹 생일이라고 친구들이 안겨준 꽃묶음, 교사절이라고 제자들이 선물한 꽃다발은 받아봤어도 이 ‘최대 명절’에 꽃다발을 받아본 적이 없다니? 그래도 명절분위기를 내느라고 거의 해마다 새옷을 입고 나서군 했지만 꽃다발이 없고서야 어디 명절 같아보이는가?  

(제자들의 꽃다발을 받아안고서)

    우리 세대는 젊은 시절에 프로포즈 이벤트라든가 하는 것을 몰라서인지 사랑하는 사이에 꽃다발을 건네는 랑만 같은 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도 꽃다발 같은 것을 받는 데는 별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60고개를 바라보는 지금에 와서 오히려 아름다운 꽃에 대한 소유욕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니 참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    

   ‘명상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나의 친구는 월요일마다 예쁜 꽃바구니를 주문하여 현관에 놓고 녀성회원들을 맞이한다고 한다. 은은한 꽃향기를 맡으면서 명상교실에 들어서는 녀성회원들의 마음도 진작 취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처음으로 녀성을 꽃에 비유한 사람에게 감사를 드려야겠다. 화려하든 수수하든 꽃은 꽃이여서 아름답고 녀자는 녀자여서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다. 나의 위이신에는 같은 직장에서 퇴직한 친한 녀성동료들의 그룹이 있는데 그 명칭이 ‘꽃보다 언니들’이다. 이젠 60,70세가 넘은 언니들이라 이른 봄에 피는 진달래꽃처럼, 한여름을 장식하는 함박꽃처럼 아름답다고 말하기가 부끄럽지만 우리는 늦가을에 피여나 오래오래 향기를 풍기는 보라빛 국화꽃처럼 우아하게 늙어가려고 한다. 그래서 위이신 그룹에 이런 명칭을 달고 웃음꽃이 만발한 ‘꽃밭’으로 가꾸고 있다.

(꽃보다 언니들)

  누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아도 내가 꽃이 되면 아름다운 것이다. 누가 나에게 꽃을 선물하지 않으면 나 절로 자신에게 선물하면 된다. 이제 3.8절 되면 더는 기다리지 말고 나 스스로라도 꽃을 사야겠다. 새옷을 입어도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것은 빛을 잃는다. 명품옷을 입고 재래시장이나 돌면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나면 오히려 속상하다. 해마다 3.8절을 기념한답시고 사 입은 새옷들은 일년에 한두번 입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 무렵이면 또 쇼핑하러 나선다. 하다못해 속옷이라도 사야 시름을 놓는 쇼핑버릇이 생겼는데 이제는 더는 옷 쇼핑에 집착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머리를 쳐든다. 

     3.8절이면 의례히 와인이 아니면 맥주라도 곁들인 그럴듯한 식사자리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는 양상을 달리해보려고 한다. 사람이, 아니 녀자가 어찌 ‘밥심’으로만 살랴. 그 날 하루라도 ‘꽃심’으로 살아보자. 객실에 혹은 현관에 수수한 꽃병이라도 좋으니 화사한 꽃을 예쁘게 꽂아 집안에 은은한 향기가 오래오래 머물게 하자. 

(옆구리 찔러서 받은 꽃다발...)

  기다리는 그 날이 오기전에 남편한테 이번 3.8절만은 돈이 아니라 꽃을 받고 싶다고 넌지시 여쭤봐야겠다. 당신이 꽃을 들고 다니기 쑥스러우면 미리 주문하여 배달이라도 시켜달라고. 그리고 당신도 3.8절에 초대 받았으면 꽃을 들고 가라고. 누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번쯤 꽃을 든 핸섬한 남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으니 말이다.

   1년 365일중 매일은 아니더라도 3월달, 녀성의 달, 나의 명절이 깃든 이 한달은 내 집에서, 나에게서 꽃향기 풍기는 날들이 되여 나도 한번 꽃보다 이쁜 녀자가 되련다. 

     

                      2024년 3월 <<로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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